세상 어느 학문이나 할 말이 많겠지만 '컴퓨터 공학'이란 학문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지 해야할 말이 참으로 많은 것처럼 보인다.
그 많은 이야기를 듣다보면 절정의 게으름이 미덕인 나로서는 세상 사는 것에 참 자신이 없다.
더군다나 새로운 코드를 보고 이해할 수 없었을 때의 절망감은 더더욱 그렇다.
글쎄, 기존에 떠들던 그 많은 이야기를 주워담기도 참 어려운 마당에 새로운 이야기가 끝없이 떠들고 있으니 보통의 인간으로서는 어지러울 수 밖에.
이런 새로운 이야기들은 화려한 미사어구로 치장되어 더욱 홀리게 하며 옛 어른들 이야기를 멀어지게 한다.
그렇게 '새로운 것이라면 무조건 가장 좋은 것이다'라고 믿고 있을 때에 갑자기 과거로 회귀하는 움직임을 보면 갑자기 정신이 멍해질 때가 있다.
사실 사용해보니 신제품이 구제품만 못한 때가 있는 것이다.
이런 복고풍 바람을 만나면 그저 분별없이 받아들인 자신에 대한 연민을 느껴야할 처지가 되어 버린다.
이럴 때일수록 '느리게 살자'란 생각이 든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녘에야 날아오르듯 그 많은 새로운 이야기 중에서 진정 취해야 할 이야기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80/20 법칙처럼 게으른 내가 꼭 취해야 할 것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그러나 새로운 기술들을 능숙하게 쓸 수 있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기술들에 대한 정의와 개념 정도는 간단하게 알아둘 필요가 있다.
즉 세상사에 대해 어느 정도는 열린 마음을 견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변화는 깨달음으로부터 시작되며 변화가 필요하다는 깨달음은 그러한 열린 마음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기술 이야기에는 사람이 빠져있다.
기술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여도 그 기술은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 사람이 없다면 아무리 뛰어난 망치라도 두드릴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LINQ, Duck Typing, Lambda Calculus, Closure 등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보다 더 우선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간의 협업, 마음가짐, 성숙도를 염두에 두지 않는 기술 선택은 우리를 구렁텅이로 빠지게 만든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현재 팀의 상황, 팀의 구성원들이 얼마나 개선을 열망하는가에 대한 고려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산출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바쁘게 쫓다 여러 번 넘어져서 삐뚤어진 사람이 되기 전에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용기', '마음가짐', '변화를 갈망하는 마음', '비폭력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하기'와 같은 기술들을 그보다 먼저 연마하라.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하니까 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면 나를 혼자 내버려 두기만 하면 돼' 같은 앳된 자신감을 버리고 나를 노출시키고 노출에 대한 두려움을 버려라(이것이 XP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먼저 투자하라. 좋은 인간관계는 좋은 비지니스를 만든다.
잡담: 오늘 SoC(Separation Of Concerns) 원칙이 'Beauty is our business'(아름다움이 우리가 하는 일이오)라고 외쳤던 Edsger W. Dijkstra 가 1974년 남긴 'On the role of scientific thought'라는 글에서 가장 처음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저 놀라운 일이다. 역시 먼저 아름다워져야 한다! (응?!)

